Day 16

내 자신이 감정적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나름 자칭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유는 이러하다.내가 더 소중하게 여겨야 마땅한 사람들, 관계들, 더 감사에 넘쳐야 할 상황들에 마땅한 감사와 귀함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메말랐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것과 소중하다고 느끼는건 다른것인가? 둘중에 하나만 해도 돼나? 소중하지 않은데 소중하다고 느끼는건 여러번 있었던 일이다. 소중한걸 알지만 소중하다 느끼지 못하면 비극인가? 느끼지못해도 소중한 것 처럼 행동하면 후회가 없을까? 감정이 내 이성에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가 적절할까? 감정에 전혀 동요되면 안된다는 의견에 나는 극구 반대한다. 인간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순수 논리만 가지고 사는게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겠는가? 하나님도 논리만으로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감히 말해본다. 논리로 치면 그때 예수님을 살리시고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알게 하는 방법도 있지 않으셨을까? 논리는 귀하고, 신기하고, 좋은 도구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마음, 정신 위에 있지는 아니한것같다. 감정 또한 논리와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은 게이지 라고 어디서 읽었는데 어딘지는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동의한다. 안좋은 감정이 있는건 무언가 내 마음이 느끼는 어떤 현실에 기반한것이니,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찾되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자아성찰 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어린아이 같은 마음일 지라도 내가 왜 그때 기분이 나빴고, 슬프고 우울했는지, 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것에 나는 과민반응을 하는지, 무조건 억누르지말고 그 감정들을 충분히 탐험하고 그 앞에 솔직해져봐야 내 감정까지도 나의 것임을, 나의 책임임을 인정하며 주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도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고 모든걸 다 보셨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하시니 그 보다 더 완변한 고백의 상대가 있을까? 내 부끄러움, 걱정, 근심, 슬픔 다 아뢸 수 있다. 신뢰 할 수 있다. 나를 나대로 받아 드리는 훈련에 가장 적합한 상담자이자 친구이자 우리의 첫사랑이 하나님이다. 나보다 먼저, 그리고 이미 나를 받아드리신 분께는 나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한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다

또 한단계 아래에는 글쓰기, 일기쓰기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 질 수 있는 연습이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챌린지 16일째인데, 벌써 느끼는 것이 많다. 다가오는 날들에는 글쓰기 챌린지가 나에게 미친 심오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싶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것 처럼 머리가 띵한 큰 깨닳음도 있었다. 이것들을 까먹지 않고 곧 글로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딘가 써놓은 것 같은데, 슬렁슬렁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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